나의 이야기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에크하르트
2008. 7. 12. 13:10
좋은 친구가 되어준 당신께.
뜨거웠던 여름날의 더위가 가을바람 속에서 숨을 죽이며 사그라들고 낙엽들도 온 몸으로 가을을 즐기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지나면 일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겠지요. 그렇게 열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걸 날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고서야 실감을 합니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웠던 올 여름을 보내고 이제 몸을 추스르고 나니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들을 새삼스레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신을 만났고 고향보다는 훨씬 추웠던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어려움을 당신은 늘 함께해 주었죠.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식구들의 걱정 속에서 당신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들은 당신과 시댁식구들의 도움으로 채워지고 차츰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반찬거리를 챙겨주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재료에 맞는 요리방법을 함께 일러주십니다. 된장국을 끓일 때는 멸치가루를 넣고 고추장아찌를 무칠 때는 물엿을 넣어야 맛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우 생채를 무칠 때는 액젓보다는 새우젓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나물하나 무치는 것부터 국 끓이고 밥을 맛있게 하는 방법까지 늘 자상하게 일러 주시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없으십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조금이라도 내게 서운하게 하면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는 시부모님과 시누이들. 그런 든든한 후원군이 있어서 난 늘 행복합니다.
결혼 초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죠. 아는 사람이라곤 시댁식구 뿐인 낯선 곳에서 마음 놓고 수다라도 떨 수 있는 그런 친구하나 없다는 게 정말 힘들었죠. 내성적인 성격에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는지라 그때 당신과 많이 다투었던 것 같네요. 결혼 전 내가 보지 못했던 당신의 술버릇은 날 너무 혼란스럽게 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에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죠. 그땐 정말 친구가 그리웠고 친정이 그리웠고 엄마가 보고 싶었답니다. 속 시원히 내 마음을 드러내놓고 실컷 당신을 미워하고 험담해도 흉이 되지 않을 사람이 나에게는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와 고모들은 날마다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 주었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엄마가 되어 당신 곁을 지킬 수 있도록 날 붙들어 주었습니다. 둘째 고모네 사업이 잘못되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사채업자들을 만나고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당신을 보면서 동생을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죠. 아직 애들은 어리고 모아둔 돈도 얼마 되지 않는데 그런 것에는 개념치 않고 통장을 털어 동생에게 힘을 주었죠. 물론 좋은 일이죠. 그래서 당신에겐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서운하기도 했답니다. 밤 12시가 넘도록 물건 배달을 하고 날마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면서도 동생 일이라면 주머니에 있는 돈도 아무 생각 없이 쥐어주곤 했으니까요.
결혼해서 잠깐 동안의 직장생활 빼고는 지금까지 당신만의 사업을 하면서 당신도 참 많이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죠. 그러나 누구에게든 의지하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또 다시 의지하게 된다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의 성실함과 올곧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언젠가 당신이 얘기했죠. 아무리 작은 사업체라도 대표라는 사람은 항상 외로운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상의를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최종적인 결론은 당사자가 내려야하고 그 결론에 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한다고 했죠. 늘 곁에서 함께 일하면서 때론 비서가 되기도 하고 협력자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했던 우리부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의논하고 격려를 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결정은 항상 당신 스스로 해야만 했죠. 그래서 외롭다는 당신의 고백을 듣고는 마음이 아팠지요.
나보다는 항상 생각이 깊고 넓은 당신. 내가 방송대학에 입학한다는 말에도 흔쾌히 동의해주었고 밤늦게 시험공부 때문에 책을 펴고 꾸벅 꾸벅 졸 때에도 늘 나에게 위로와 힘을 줍니다. 그래서 벌써 3학년이 되었고 이제 곧 또 한 학기가 끝나갑니다. 그런 당신의 배려에 보답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졸업해야겠죠?
벌써 시골에서는 가을추수가 거의 끝이 났습니다. 올해는 부모님 농사일을 거의 못 도와드렸습니다. 매년 농번기 때는 거의 일요일마다 내려가서 농사일을 하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일하고서도 일요일 날 시골에 가서 힘든 일을 하루종일하면 당신은 이삼일씩 끙끙 앓곤 했죠. 그래도 그렇게 일요일에 가서 도와드리지 못하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하는 당신도 이젠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일 때문에 자주 못가니 농사를 줄이시라는 당부에 그전보다는 농사의 양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예전처럼 건강하시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 쓰는 당신을 보면서 나또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벼 가마니를 당신과 같이 실어 나르면서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부모님을 뵙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지금보다는 좀더 부모님께 신경을 써 드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에게 올 여름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처럼 당신도 힘들었죠? 아니 어쩌면 당사자인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연히 발견된 몸의 이상으로 암 진단을 받고 병원가기 전날까지 멀쩡하던 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누웠으니 말이죠. 나도 처음엔 모든 게 혼란스럽고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죠. 그런 날 지켜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날 지켜주고 내 곁에 있어주겠다며 나에게 위로를 해주던 당신.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병원간이 침대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출근을 하면서도 내 등을 두드리고 힘을 주는 당신 덕분에 이제 건강함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활할 수 있으니 이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내 몸이 건강해야 당신 술친구도 해 줄 수 있으니까요.
부부는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라고 했던가요.
이젠 모든 짐을 혼자서만 지려하지 말고 나에게도 내려놓고 함께 나누어요. 가끔은 당신에게 잔소리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해대지만 난 당신의 영원한 친구니까.
어제 밤에 혼자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한숨을 푹 내쉬던 당신은 왜 그러냐는 내 물음에 “가을이쟎아!” 그랬죠. 난 피식 웃고 말았지만 그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당신마음속의 고민들이 들어있는지 난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14년 동안 변함없이 날 사랑하고 아껴준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합니다.
올가을에도 변함없이 당신의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낙엽 쌓인 가을 길 함께 걷지 않을래요?
2005년 가을에 당신의 영원한 친구.
2005.10.25
뜨거웠던 여름날의 더위가 가을바람 속에서 숨을 죽이며 사그라들고 낙엽들도 온 몸으로 가을을 즐기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지나면 일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겠지요. 그렇게 열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걸 날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고서야 실감을 합니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웠던 올 여름을 보내고 이제 몸을 추스르고 나니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들을 새삼스레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신을 만났고 고향보다는 훨씬 추웠던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어려움을 당신은 늘 함께해 주었죠.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식구들의 걱정 속에서 당신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들은 당신과 시댁식구들의 도움으로 채워지고 차츰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반찬거리를 챙겨주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재료에 맞는 요리방법을 함께 일러주십니다. 된장국을 끓일 때는 멸치가루를 넣고 고추장아찌를 무칠 때는 물엿을 넣어야 맛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우 생채를 무칠 때는 액젓보다는 새우젓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나물하나 무치는 것부터 국 끓이고 밥을 맛있게 하는 방법까지 늘 자상하게 일러 주시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없으십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조금이라도 내게 서운하게 하면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는 시부모님과 시누이들. 그런 든든한 후원군이 있어서 난 늘 행복합니다.
결혼 초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죠. 아는 사람이라곤 시댁식구 뿐인 낯선 곳에서 마음 놓고 수다라도 떨 수 있는 그런 친구하나 없다는 게 정말 힘들었죠. 내성적인 성격에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는지라 그때 당신과 많이 다투었던 것 같네요. 결혼 전 내가 보지 못했던 당신의 술버릇은 날 너무 혼란스럽게 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에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죠. 그땐 정말 친구가 그리웠고 친정이 그리웠고 엄마가 보고 싶었답니다. 속 시원히 내 마음을 드러내놓고 실컷 당신을 미워하고 험담해도 흉이 되지 않을 사람이 나에게는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와 고모들은 날마다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 주었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엄마가 되어 당신 곁을 지킬 수 있도록 날 붙들어 주었습니다. 둘째 고모네 사업이 잘못되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사채업자들을 만나고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당신을 보면서 동생을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죠. 아직 애들은 어리고 모아둔 돈도 얼마 되지 않는데 그런 것에는 개념치 않고 통장을 털어 동생에게 힘을 주었죠. 물론 좋은 일이죠. 그래서 당신에겐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서운하기도 했답니다. 밤 12시가 넘도록 물건 배달을 하고 날마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면서도 동생 일이라면 주머니에 있는 돈도 아무 생각 없이 쥐어주곤 했으니까요.
결혼해서 잠깐 동안의 직장생활 빼고는 지금까지 당신만의 사업을 하면서 당신도 참 많이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죠. 그러나 누구에게든 의지하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또 다시 의지하게 된다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의 성실함과 올곧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언젠가 당신이 얘기했죠. 아무리 작은 사업체라도 대표라는 사람은 항상 외로운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상의를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최종적인 결론은 당사자가 내려야하고 그 결론에 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한다고 했죠. 늘 곁에서 함께 일하면서 때론 비서가 되기도 하고 협력자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했던 우리부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의논하고 격려를 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결정은 항상 당신 스스로 해야만 했죠. 그래서 외롭다는 당신의 고백을 듣고는 마음이 아팠지요.
나보다는 항상 생각이 깊고 넓은 당신. 내가 방송대학에 입학한다는 말에도 흔쾌히 동의해주었고 밤늦게 시험공부 때문에 책을 펴고 꾸벅 꾸벅 졸 때에도 늘 나에게 위로와 힘을 줍니다. 그래서 벌써 3학년이 되었고 이제 곧 또 한 학기가 끝나갑니다. 그런 당신의 배려에 보답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졸업해야겠죠?
벌써 시골에서는 가을추수가 거의 끝이 났습니다. 올해는 부모님 농사일을 거의 못 도와드렸습니다. 매년 농번기 때는 거의 일요일마다 내려가서 농사일을 하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일하고서도 일요일 날 시골에 가서 힘든 일을 하루종일하면 당신은 이삼일씩 끙끙 앓곤 했죠. 그래도 그렇게 일요일에 가서 도와드리지 못하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하는 당신도 이젠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일 때문에 자주 못가니 농사를 줄이시라는 당부에 그전보다는 농사의 양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예전처럼 건강하시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 쓰는 당신을 보면서 나또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벼 가마니를 당신과 같이 실어 나르면서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부모님을 뵙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지금보다는 좀더 부모님께 신경을 써 드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에게 올 여름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처럼 당신도 힘들었죠? 아니 어쩌면 당사자인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연히 발견된 몸의 이상으로 암 진단을 받고 병원가기 전날까지 멀쩡하던 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누웠으니 말이죠. 나도 처음엔 모든 게 혼란스럽고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죠. 그런 날 지켜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날 지켜주고 내 곁에 있어주겠다며 나에게 위로를 해주던 당신.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병원간이 침대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출근을 하면서도 내 등을 두드리고 힘을 주는 당신 덕분에 이제 건강함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활할 수 있으니 이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내 몸이 건강해야 당신 술친구도 해 줄 수 있으니까요.
부부는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라고 했던가요.
이젠 모든 짐을 혼자서만 지려하지 말고 나에게도 내려놓고 함께 나누어요. 가끔은 당신에게 잔소리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해대지만 난 당신의 영원한 친구니까.
어제 밤에 혼자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한숨을 푹 내쉬던 당신은 왜 그러냐는 내 물음에 “가을이쟎아!” 그랬죠. 난 피식 웃고 말았지만 그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당신마음속의 고민들이 들어있는지 난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14년 동안 변함없이 날 사랑하고 아껴준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합니다.
올가을에도 변함없이 당신의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낙엽 쌓인 가을 길 함께 걷지 않을래요?
2005년 가을에 당신의 영원한 친구.
2005.10.25